“사랑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어떻게요?”
양희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거지”“그런 걸 뭣하러 생각해요.”
“아니…… 네가 날 사랑한댔잖아. 킬킬킬킬…… 그 고백을 들은 거잖아, 지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앞으로 우리 어떻게 되는 거냐고.”
“모르죠, 그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알 필요가 없다고?”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요.”
필용은 황당했다. 얘가 지금 누굴 놀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며?”
“네, 사랑하죠.”
“그런데 내일은 어떨지 몰라?”
“네.”
“사랑하는 건 맞잖아. 그렇잖아.”
“네, 그래요.”
“내일은?”
“모르겠어요.”
필용은 슬퍼졌다. 사랑한다면서 내일은 모르겠다니, 무언가가 필용의 따귀를 갈기고 지나간 것 같았다. 그것이 양희인 건 분명했고 그러니까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었지만 마음은 다잡아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하지만 그건 실제일까.
아무것도 쓰지 않고 이름만 적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형태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조중균씨는 부끄러웠다. 여기에 이름을 적고 가만히 기다리라는 교수의 의도를 알 것 같았다. 조중균씨는 이름을 쓰지 않고 빈 종이에다 무언가를 적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경조사에 가면서 돈봉투도 내지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나쁘지 않다니. 이제 와서 얼마나 나쁜 말인가.
당연히 불쌍하게 죽어야 하는 것 아니야? 사람이 불쌍하지 않게 죽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재작년인가 엄마는 더이상 이모부에게 편지하지 말라고 했다. 멀리 떠났다면서. 그래도 편지를 계속 썼다. 무슨 일을 주기적으로 하는 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나는 학교에서 쉬는 시간과 급식시간에는 늘 선글라스를 낀다. 수업시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엎드렸다 일어났다 한다. 엄마도 주기의 중요성을 알았다면 지금보다는 덜 불행했을 텐데. 수입은 일정한 주기로 들어와야 한다. 부모는 일정 시간 집에 머물러야 한다. 삶에는 파도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든 일정한 간격으로 밀려왔다 밀려나가야 한다.
진료가 끝나는 일곱시, 병원은 한결 조용해진다. 홀을 채우던 간호사들도 퇴근하고 입원병동만 부산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앓는 시간이다. 병동에서 비극적이지 않은 밤이란 없었다. 중환자들은 중환자라서, 아닌 사람들은 그런 중환자들이 자기 미래가 될까봐 끙끙 앓는다. 그녀는 항상 궁금했다. 왜 사람들은 밤이 되면 더 아픈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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