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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보 이즈 어프레이드 (Beau Is Afraid)

by 쑨쑨 2023.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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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이즈 어프레이드 (Beau Is Afraid) 입니다.

처음엔 (boy's Afraid) 인 줄 알았어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어느 쪽이어도 괜찮다는 걸 알았지만요.

영화를 본 지는 일주일 정도 지났습니다. 이제서야 글을 써 보는 거는 이걸 대체 글로 어떻게 옮겨야 하나 고민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때문에 휘발된 것들이 많은데 그래도 한 번 써볼게요.

축약하자면 어드벤처로 보는 게 딱 맞는 것 같고, 영화관까지...는 안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너무나도 훌륭하고 (대체 어떻게 연기한거야?)

재밌냐 없냐로 치면 재미있는 축이지만, 너무 강렬하고 왕창 쏟아붓는 느낌이라 좀 버거웠습니다.

밑에서부터는 제 주관적인 해석과 스포가 포함됩니다.

그래도 호아킨 피닉스 x 아리 에스터 조합이다? 너무 궁금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기도 하구요.

위에 잠깐 언급했지만 보이즈 어프레이드는 (boys)로 읽히기도 합니다. 영어 제목을 그대로 차용해서 쓴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줄거리에 담긴 것이 다예요.

'편집증'을 가진 보가 '그'를 '집착'적으로 사랑하는 '엄마'를 '무조건' 만나러 가야 하는 '기억','환상','현실'

아주 그냥 제가 환장하는 거 다 있습니다.

참고로 편집증은 이렇대요

편집성 인격장애는 타인의 행동을 의심하고, 타인의 의도를 불신하는 것입니다. 환자는 적대적이고 완고하며 방어적입니다. 또한 환자는 친밀감을 느끼는 것을 회피하며, 경직되고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편집성 인격장애의 원인은 뚜렷하지 않습니다.

영화는 4부작처럼 운영됩니다. 옴니버스가 아니라.. 뭐라 그러더라 피카레스크식 구성? 같습니다.

피카레스크식 구성은 독립된 각각의 이야기에 동일한 인물이 등장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개하는 구성 방식이다. 하나의 주제나 제목 아래 몇 개의 독립된 이야기가 모여 있다는 점에서 옴니버스식 구성과 유사하지만 옴니버스식 구성은 서로 다른 중심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 다르다.

라고 하네요.

1 - 보의 집

2 - 뭔 남의 집

3 - 숲속 고아들

4 - 엄마네

이렇게 확실하게 장소가 변합니다. 여튼 이제 제대로 이야기해 봅시다.

영화는 엄마의 자궁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처음에 음향이 무슨 전쟁 나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마치 폭발음, 총소리와 같은 쾅쾅 하는 소리요.

그 안에서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호흡이 가빠지고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저는 삶으로 내던져지는 것에 대한 공포가 느껴졌어요. 나오기 싶어 하지 않는, 그러나 피투되어지는 생에 대한 막연하고 강렬한 공포. 아니나 다를까 태어나자마자 머리가 떨어졌다느니, 왜 울지 않냐 하느니 하며 엉덩이를 때립니다.

그리고 으앙하고 터져 나오는 울음은 그야말로 불안과 공포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울어버리는 수밖에' 하는 느낌이에요.

영화는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는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 엄마가 죽었으면 하는 은근한 마음이 드러나면서 시작됩니다.

상담사는 Guilty 라고 적습니다. 저는 이 단어를 중심으로 영화를 봤어요.

'죄책감'

보는 끊임없이 죄책감을 가집니다. 아니, 주입받습니다. 그리고 죄책감으로 살아가요. 죄책감을 보의 원동력으로 봤습니다.

그리고 양가감정도요!

여기서 보는 건강염려증과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강박적인 모습이 보여요.

1막이라고 느껴졌던 보의 집, 그의 동네입니다.

여긴 미친놈들 천지에요.

왜인지 모르겠는데 분노에 차서 보의 집으로 들어오려는 녀석과 보는 익숙하다는 듯 달리기를 해서 피해 갑니다.

자살하려는 애도 있고, 나체로 춤을 추고, 노숙자부터 별 이상한 놈들이 다 있어요.

저는 1막이 보의 정신세계가 붕괴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했어요.

의식과 전의식의 차원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거로는 나눌 수 없는 어떤 정신적인 방어막으로 보이기도 하구요.

보의 집은 보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곳입니다. 저런 무법자들일지 언정 보의 집을 깨부수고 들어오지는 않아요. 보가 문을 열어두지 않는 이상 들어올 수 없습니다.

보에게 있어 밖은 그야말로 죽음투성이입니다. 언제든지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으로 가득한 곳이에요. 집에 들어오려면 심호흡을 하고 내게 덤벼드는 녀석에게서 달아나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에게 가는 걸 미루고 미루다가 가게 되는데, 이상한 일들을 겪어요.

집을 수리하는 사람이 '넌 좆됐어' 라고 한다든지, 자신은 조용히 있는데 옆집에서 새벽마다 찾아와 '음악 소리 좀 낮추시죠?' 하다가 음악을 엄청 크게 틀어서 비행기 시간을 놓치게 된다든지요.

당일이 되어서는 비행기 시간도 없어 죽겠는데 사소한 걸 챙기다가(왁스 치실) 집 열쇠와 짐을 잃어버리고 (누군가 훔쳐가고).. 여튼 난리입니다.

중요한 건 보가 집을 나갈 수 없는 명분이 계속 생긴다는 거예요. 보는 익숙하다는 듯이 말해요. '죄송해요... 하지만 이런 상태로 갈 수는 없잖아요? 어쩌면 좋을까요?' 여기에는 이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그러니까 이해한다고 말해줘. 가 가득 담겨있습니다. 엄마는 알아서 잘 할 거라 믿는다 하며 끊어버리죠. 보의 죄책감 스택이 쌓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깨버리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정신과 약을 물 없이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약을 먹었는데 물도 없고, 수도도 고장 난 것을 알게 된 보는 문을 열어둔 상태로 가게로 달려갑니다.

여기서 보이는 상대들의 모든 반응이 이상해요. 가게 주인은 보가 마치 강도인 것처럼 대응하고, 집 주인은 스팸전화처럼 대응합니다. 여기서 관객은 기이함을 느껴요. '아, 지금 보가 행동하는 것은 보의 시선이고, 다른 사람 입장에선 굉장히 다르게 보이는구나'를 알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어느 것도 사실로 믿지 않게 됩니다. 저는 그랬어요 ㅎㅎ

보가 문을 열어두고 가게로 달려가 물을 마시는 사이에 길거리 낭인들은 보의 집에 들어가 난장판을 핍니다. 보는 그저 창문으로 망가지는 자기 집을 바라볼 수밖에 없어요.. 보의 (안전하다고 믿는) 정신세계가 망가지는 중요한 장면으로 봤어요.

특히 왜인지 모르겠지만 늘 화나있고 보를 공격하려고 있던 사람이 911을 치려다가 못 누르고 죽어있는 걸 보가 발견하는데, 저는 이 장면이 굉장히 상징적으로 보였습니다.

마치 억눌려있던 보의 폭력성이 완전히 해방되는 것으로 보였거든요. (풀려난다? 억제가 안 된다?)

그런 상태에서 엄마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이제 보는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진작에 갔더라면 하는 죄책감이 또 쌓입니다.

나갔더니 나체 살인마가 달려들어요. 보는 살려달라며 경찰에게 가지만 경찰은 오히려 보에게 무기 내려놓으라고 하며 제발 다가오지 말라고 애원하는 모습까지 보이죠.

저는 나체 살인마 = 보 라고 느껴졌어요. 완벽한 동일 인물이냐 이런 것들이 중요하기보다, 보가 자신의 폭력성을 주체 못하고 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요. 여튼 보는 이제 자해를 하든, 누군가를 찌르든, 누군가에게 찌르든 폭력과 공격성, 분노 그 자체에 완벽히 노출됐습니다.

과거엔 티켓이 없어서, 물건을 잃어버려서 ,, 정도의 명분이었다면 이제 죽기 직전의 모습이(실제로 행동하는) 되는 게 엄마에게 갈 수 없는 명분이 됐어요.

그러다 차에 치입니다. 이게 뭔..

2막이라고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전환됩니다.

외과의사에게 운 좋게 구해져서 보는 치료를 받아요.

뭐 이런저런 상징적인 사건들이 많지만..

저는 여기서 보가 꽤 다양한 자극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할 얘기가 너무 많은데, 각설하고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부부는 보에게 안정감을 주려 하고 보는 외부에서 계속해서 죄책감을 주입받는다는 것이에요.

아는 변호사에게 전화하니까 보의 무책임함을 굉장히 비난하며 보는 죄책감 스택을 쌓아갑니다. 반면 부부는 자신을 우선시하기를 권하죠.

이 과정에서 보는 다시 한번 분노를 자신의 안으로 들여옵니다. 그 분노가 부부의 죽은 아들 친구(PTSD를 겪는 군인) 으로 대표된다고 봤어요.

타인의 분노를 들여오는 것이긴 하지만 (내사) , 어쨌든 보는 이전과 같이 자/타인을 직접 해하는 광적인 표출을 어느 정도 억제하면서 여정을 떠납니다. 물론 그 분노는 다시 자신을 향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도망가는 입장이 돼요. 아들 친구가 자기를 죽이려고 계속 따라오거든요.

읽으면서도 뭔 말인지 모르겠죠? 근데 영화 보면 아하 싶을 겁니다.

여튼 여차저차 집을 탈출해서 엄마에게 향합니다.

중요한 건 죄책감을 주입받은 것과, 비록 자신에게 향할지 언정 공격성과 분노를 되찾았다는 거예요.

쓰면서도 개 힘드네

3막으로 갑시다.

여기는 모여서 연극을 하고, 또 다른 숲으로 보금자리를 옮기는 숲의 고아들을 만납니다.

다른 숲으로 옮기기 전에 연극을 하는데, 운 좋게 그 시기에 맞게 만나게 됐어요.

치료도 받고, 연극도 봅니다. 그러면서 보는 아빠를 만나요. 환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요.

보는 연극을 보면서 자신이 꿈꿔 봤던 미래를 연극에 투영시킵니다.

운명이라는 사슬을 끊고, 기꺼이 나아가는 그런 자신을 생각하면서요.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죠.

자신을 쫓아오던 군인 친구가 무차별로 총을 난사하고 폭탄을 던지고 아주 그냥 난리를 칩니다.

그때 보는 환영인지 모를 아빠의 도움을 받아요. '도망쳐!' 라는 말을 듣고 살아남습니다.

2막은 보가 임시적인 가족, 어쩌면 영원한 가족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지만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불안하고 공포스럽습니다. 그런데 3막에서 보여주는 고아들의 모임에서 보는 한 결 편안해 보여요.

자신의 이상을 투영하기도 하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아빠를 만나기도 하죠. 도움도 받고요.

아이러니합니다.

3막에서 중요하다고 느낀 건, 보가 자신의 이상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그래 어쩌면 나도 이런 삶을 살 수 있었을 건데, 내 의지로, 내 사슬을 끊고, 나의 삶, 나의 생, 피투 된 생이지만 기투하여 나아가는 삶.

마치 실존주의를 연상케 하는 막이에요.

하지만 그건 연극에 불과하죠. 피투된 생은 지속되고 있고, 자신의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게 죄책감으로 통제하며 동력 삼아 살아가는 삶을 살아갑니다. 죄책감 역시 주입되어 있고, 분노 역시 자신의 것이 아니에요.

주인공의 삶은 타인의 것 그 자체입니다.

좋아요 대망의 4막입니다.

엄마 집에 도착해요.

도착하자마자 가스라이팅 낭낭합니다. 죄책감 스택 안 쌓으면 섭하잖아요?

음성에서 엄마는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했지만, 아들은 등장하지도 않습니다잉 하면서 조롱해요.

그러나 시신을 보고 보는 알아차립니다. 엄마가 아니군요?

오잉?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가봤더니 엄마가 살아있네.

여기서 밝혀지지만, 아빠가 복상사했다는 것은 거짓이었고, 오르가즘을 느끼면 죽는다는 것은 거짓이었다는 것. 엄마의 자작이었다는 게 드러나요. 물론 이것도 진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보가 그렇게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우리는 생각해 볼 게 있어요.

 

보는 이런 것들을 의도적으로 통제당하며 컸습니다. 프로이트 이론이긴 하지만 여튼!

보는 굉장히 억압적이에요. 1막에서 말했죠? 보는 그 난잡한 정신세계에서 자기만의 성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으려 합니다. 왜냐면 점령당하는 순간 자신도 자신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뭐 여튼 여기서도 이런저런 엄마와 논쟁을 하고 첫사랑인 여자애랑 관계를 맺다가 여자애는 갑자기 복상사하고 그러는데..

중요한 건 보가 자신의 무의식과 마주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거짓된 정보들에서 진실을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1막은 보의 의식, 전의식에 가까웠다면 (충분히 의식할 수 있는) 4막에서는 다락방에 감춰뒀던 무의식과 마주하게 돼요. 거기에서 성기에 대한 강력한 공포와 동시에 '내가 너의 아빠야'라는 말을 들을 만큼의 선망. 이런 것들이 보이는데요.

여기까지 쫓아온 군인 친구(분노)는 성기 괴물에게 달려들었다가 머리 뚫려 죽습니다. 보의 분노가 다시 해방되는 순간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후에 엄마의 말을 못 견디고 갑자기 엄마를 목졸라 죽이죠. 보의 분노가 의식 수준에서 벗어나서 (통제를 벗어나서) 표출되는 순간입니다. 보도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 합니다.

그리고 집을 나서서 배를 타고 동굴 안에 갑니다.

오잉? 엄마는 재판관이 되어있어요.

그리고 보의 일생이 읊어지다가 보는 사형에 처합니다. 물에 빠져 죽게 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또이잉 이게 멀까~~요

글을 읽으면서도 중구난방에다가 뭐야 갑자기. 줄거리를 얘기하는 거야 주인공의 심리 묘사를 하는 거야 해석을 하는 거야? 싶으시죠?

영화도 그래요. 영화를 보고 읽으면 어떤 것들을 중점적으로 봤구나, 여기를 이런 의미로 읽었구나 싶으실 겁니다.

3시간의 러닝타임이니까 화장실 들렸다가 꼭 가시고 중간에 당 충전할 거 들고 가세요. 제 옆에 분은 아예 고개가 꺾여서 주무시더라고요. 저도 쬠 졸았습니다.

생각할 거리가 정말 정말로 많이 보이는 영화에요.

저도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되게 많은데, 그걸 글로 옮기기에 글 솜씨도 부족하거니와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장면들 떠올리면서 글 쓰니까 또 힘드네.. 1막 쓰고 힘빠져서 쭉 짧아지는거 느껴지시죠?

무엇이 진실이고 환상인지를 구분하면서 보기보다, 지금 보라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한 영화 같습니다. 보는 지금 이런 장면을 보고 있구나. 싶으면서요. 그리고 그렇게 보도록 유도해요. 보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이 진짜 부조리투성입니다. 나는 잘하는데 왜 저래? 하면서요.

전반적으로 특유의 높은 톤을 내는 보의 목소리나 말투, 아빠의 복상사 이야기, 고환염, 엄마의 주기적인 가스라이팅과 집착, 통제욕, 소년 시절의 보, 분노, 의식과 무의식, 정신과 의사의 존재, 엄마에게 사주려는 선물의 의미, 숲에서 만난 임신한 여자, 연극의 내용, 물이 주는 상징성, 페인트를 마시는 장면, CCTV, 부부의 역할, 지속적인 죄책감을 주입받는 단서들, 보의 어린 시절 기억, 엄마와의 대화 내용, 장례식, 하녀, 등등,,,, 진짜 얘기할 게 무궁무진합니다.

근데 다 못쓰겠어요.. 이해시킬 자신도 표현할 자신도 없답니다. 원한다면 보고 와서 저와 말을 하시죠!

+특히 양가감정에 대해선 많은 말을 못했는데..

이미 다 써버렸네요. ㅎㅎ 축약하면 보는 좆됐어! 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좆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의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 조차 타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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